1909년 한국에서 활동하던 40명의 선교사 중에 11명이 맥코믹 신학교 출신이었습니다.
한국의 장로교 신학교는 1901년 마펫(Samuel Moffett)이 평양의 자신의 집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시작하였습니다. 1902년에 두 명의 한국학생과 함께 정식으로 신학반을 시작하여 1907년의 7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. 첫 신학교의 교장 마펫과 Charles A. Clark, Sadie Moor, Charles Bernheisel, James Adams 등의 맥코믹 신학교 출신의 교수들은 신학 교육은 물론 초기 한국장로교회 신학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.
마펫의 노력으로Cyrus McCormick (1809-1884)의 부인Nettie McCormick(1835-1923) 여사는 11,000만원을 기증하여 평양신학교의 첫 건물을 완공하였습니다. 2층 기와 건물인 이 신축 교사는 1,000명을 수용하는 채플이 있었습니다. 1922년에는 다시 McCormick부인이 70,000원을 기증하여 3층 건물을 새로 지었고, 기숙사 6동 중 2채를 맥코믹 기념관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.
1980년대 중반에 맥코믹은 증가하는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와 협력하기 위해 Korean-American Ministry Center를 설치하여 한인교역자 계속교육과 한인 신학생 교육에 협력합니다. 그 이후 정교수로 윤승구, 전헌, 한윤천, 이재원 교수가 재직하여 한국 교회의 신학과 맥코믹의 가교가 되었습니다. 한국 유학생의 증가로 학생의 25%까지 이르렀고, 한국어 D. Min과정이 개설되는 등 목회자 교육, 및 한국 신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위한 협력이 증대하였습니다.
그 중 1993년부터 장로회신학대학교와 공동으로 D. Min program을 운영하여 2000년대 후반까지 많은 한인 목회자들이 맥코믹의 교육을 공유하였습니다. 맥코믹 캠퍼스에서 미주 한인 목사들을 위한 D. Min과정이 2017년부터 재개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.